섹스를 몇 번 해보고 나서 19금 비디오를 본 적이 있다.
엄청 힘들어 하지만 즐거워 하는, 끝나고 나서 짓는 미소까지. 내가 생각했던 섹스의 모습은 수줍음과 부끄럼도 있었지만 저런 모습도 있었다.
하지만 대부분 현실의 섹스 모습은 그렇지 못했다. 애인의 기분에 맞춰 주는 정도? 좋냐고 물어보면 ‘정말로 좋다’고 대답해주는 센스? 섹스가 끝나면 힘들어 잠들기 급급했던 모습?
그렇다고 섹스가 싫냐고 물어보면 그건 아니었다. 사랑하는 그 사람의 체온을 나눌 수 있어서 좋고, 그 사람과 가장 은밀한 관계가 된다는 게 좋았다. 그로인해 우리만이 느낄 수 있는 분위기는 덤이 될테니깐. 그러나 그것은 오르가즘과는 또 다른 것이라 생각된다.
A양은 섹스를 몇 년 동안 했지만 오르가즘을 느껴보지 못했다.
A양이 처음으로 느꼈던 날은 술의 힘을 빌려 자신의 감정에 솔직했던 날이었고 그 후로도 또 감감 무소식이었다.
두 번째는 젤을 바르고 나서였다. 젤을 바르고 하는 섹스는 정말 다른 세계 였다고 한다. 몸은 쉽게 달아올랐고, 기분 또한 색달랐다고 한다. 하지만 당시의 애인이 젤을 별로 좋아하지 않아서 그렇게 오르가즘과 또다시 굿바이를 했다고 한다.
세 번째는 아이를 낳고서 느껴봤다고 한다. 아이를 낳으면 질 부분이 변한다고 하더니 정말 그렇게 된 것이다. 남편과의 관계 3번 중에 한 번은 오르가즘을 느낀다고 했다.
왜 이렇게 순서를 매겨서 길게 늘어놓느냐 하면, 오르가즘은 그냥 계속 섹스만 한다고 해서 느낄 수 있는 게 아니라섹스가 변화해야 얻을 수 있는 것이기 때문이다. 거부감을 느끼지 않는 선에서의 변화는 좋다고 생각한다. 거부감을 조금이라도 느끼게 되면 공포로 변할 수도 있고, 집중을 할 수도 없기 때문에 거부감을 느끼지 않는 선에서의 변화가 중요하다고 생각된다.
A양은 저 세 번의 과정 중 자신이 어떤 자세를 취했을 때 자신이 오르가즘을 느끼는지 알게 됐지만 그걸 해 달라고 할 용기가 없었다고 한다. 사랑하는 사람에게 섹스를 좋아하는 여자로 보이고 싶지 않았다고 한다. “나는 이렇게 하는 게 더 잘 느끼는 것 같아. 그러니깐 이렇게 해 줄래?” 쓰면서도 쑥스러운 이 말을 면전에 대놓고 하기는 힘든 것 같다.
아, 오르가즘 만나기 어렵다.
하지만 오르가즘을 느끼고 난 후의 섹스 라이프는 완전히 달라졌다고 한다. 오르가즘을 느끼고 나서는 여자도 섹스를 느낄 수 있다는 관점으로 바뀌었다고 한다. 나는 이게 참 좋다고 생각 된다.
내가 왜 이런 생각을 했냐면, 얼마 전 갱년기에 접어든 B양은 “섹스는 귀찮아. 그 귀찮은 걸 남자들은 왜 하는지 모르겠어. 남자는 60이 넘어도, 환갑이 넘어도 들이대. 그렇게 귀찮은 걸 왜 해. 안해도 살잖아!” 라고 말했다. B양은 정말로 섹스를 싫어했다. (그렇지만 애는 셋이나 낳았다;) 그녀는 일생동안 섹스를 좋아한 적이 없다고 했다. 그러나 그녀가 단 한 번이라도 오르가즘을 느껴봤다면 그녀의 섹스 라이프는 바뀌지 않았을까?
예전에 즐겨보던 미국 드라마<섹스 엔 더 시티>에서의 사만다는 나이가 많이 들어 갱년기를 걱정 하면서도, 유방암 임에도 섹스를 즐겨 했다. 그 이유는 섹스가 얼마나 즐거운 것인지 즐거움의 요소를 찾았기 때문이라고 생각 된다. 드라마에서 그녀는 엄청난 남성편력을 보였지만 결국 섹스를 통해 진정한 사랑을 찾지 않았나? 처음부터 사랑으로 시작했다해도 좋았겠지만 섹스부터 시작해 진정한 사랑을 찾은 그녀의 스타일도 나는 멋있다고 생각한다. 필자는 하지 못할 것이기에… 갖지 못하는 것에 대한 동경? 이랄까.
인생에서 섹스를 빼놓고 얘기 한다는 건 정말 성직자가 아니고는 힘든 것 같다. 그만큼 우리 삶에서 가장 가깝고 은밀한 곳에 있는 것인데 기왕이면 사만다처럼 즐겁고, 행복하게 했으면 좋겠다.
오르가즘. 그것은 여자의 숨겨진 탐욕의 본능이 아니라,
광산에 숨겨져 있는 보석 같은 것이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