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모님 집에 D.H. 로렌스의 소설 <채털리 부인의 연인>이 있다. 예전에는 <차타레 부인의 사랑>이라는 제목으로 나왔는데, 여하튼 내가 글의 흐름이란 것을 아는 나이일 때부터 이 소설을 열심히 읽었다. 무려 세로쓰기에, 한자어도 많아서 여러 가지 장벽이 높았지만, 채털리 부인이 사냥꾼지기와 나눈 잠자리 장면은 읽고 또 읽어도 질리지 않는 마력이 있었다. 무엇보다 ‘오르가슴이란 이런 것’이라고 채털리 부인을 읽으며 감을 잡았다. 소설 채털리 부인에서 묘사한 오르가슴의 원문을 직독직해하면 다음과 같다.
'그녀의 세포조직과 의식을 빙빙 돌며 통과하는 감각들의 순수하고 깊은 소용돌이. 그녀가 하나의 완벽한 동심원의 액체가 되는 느낌'.
이 표현이 한동안 머리에 똬리를 트는 바람에 내 섹스 라이프가 제대로 모양을 갖추기도 전에 휘청하기도 했다. 섹스를 시작하고 몇 번을 더 해봐도 심신이 회오리바람에 휩싸이는, 채털리 부인이 말한 그런 오르가슴을 만나지 못했다. 남자의 섹스는 발기하면 오르가슴으로 이어지는데, 왜 나는 ‘깊은 소용돌이’에 빠지지 못하는 걸까.
남자친구와의 잠자리는 분명 좋았다. ‘하지만 그 정도로는 만족할 수 없는걸.’ 마음의 소리가 계속 내게 말을 걸었다. '왜 스스로 클리토리스를 만져서 황홀경에 오를 때의 그 붕 뜨는 느낌이 남자랑 할 때는 없을까', '너무 일찍 포르노그래피에 노출된 부작용일까', '크고 힘찬 성기니 무용수 허벅지 같은 요소들은 사실 나의 섹스 라이프에 별로 영향력이 없는 아이들인가'하고 좌절했다. 혼자 하면 어느 때고, 얼마든지 오르가슴에 확실히 오르는데, 남자랑 잠자리를 가지면 자위만큼의 풍만한 절정을 느껴본 적이 없었다. '남자를 만날 때 얼굴은 보지 않아요'라는 말만큼이나 '오르가슴이 섹스의 전부는 아니잖아요'라는 말은 울림이 없다.
하지만 이런 속마음을 어떻게 그에게 이야기해야 할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