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리아는 이 화가, 그녀 자체 안에 숨어있던 진짜 빛을 발견해준 유일한 이 남자와 사랑의 감정을 느끼면서 육체와 정신이 하나로 되는 경험을 하고는 그에게로 간다. 할리퀸 로맨스 같은 결말이다. 그러나 이쯤에서 작가는 살짝 언질을 준다. 삶은 찬란한 환상, 거기에서 끝나지 않는다고. 소설이 끝나는 지금, 판타지가 사라진 그 순간부터 이들의 진짜 삶은 시작된다. 우리네 삶이 그러하듯.
설렘, 두근거림, 이것은 각자 자신의 환상 속에서 존재하는 욕망의 일부 기간에 어느 정도 한정적으로 존재한다. 아무 절박함이 없어도 섹스 중 누구나 본능적으로 단지 러쉬하는 시간(11분)처럼... 그 후, 삶 속에서 변질되고, 이지러짐, 그 시간을 견딜 수 있는 욕망에 대해 어떻게 해야 하는지 우리는 잘 아는 바가 없다.
우리는 사랑과 성욕이라는 것 앞에 있어서는 늘 믿음 속에서 배신당하며, 속단 속에서 마냥 머물기를 허락받지 않는다. 내일이면 이 모든 짓거리를 접고 더 나은 내일로, 오늘의 굴욕 따위는 없었던 것처럼 치부할 수 있는 미래가 올 거라고 믿어 의심치 않는 창녀, 그녀처럼, 우리의 성에 대한 시선도 바로 코앞에 머물며 지나치게 긍정적이다.
성적 욕망의 차고 이지러짐에 대한 멀고 궁극적인 시선을 가진 적 없다. 아무도 가르쳐주지 않았다. 이 근거 없는 긍정은 삶 속에서 필연적으로 대가를 지불하게 된다. 앞뒤 재보지 않는 무의식적인 욕망의 배설 타임, 그 후에 우리는 모두 각자 처음 가 본 추운 욕실에서 더럽혀진 몸을 씻고, 혼자서 약속도 미래도 없이 황망하게 문을 열고 나가야 할 때가 온다. 한때 뜨거웠지만 결국은 차갑고 외로워지고 마는 성. 아무도 예고해주지 않아 겪어보기 전에는 결코 알 수 없었지만, 그것이 성이다.
그래도 우리는 판타지를 꿈꾼다. 앞뒤 재보지 않고 몰입하는 시간까지는... 보이지 않는 나의 가치를, 나의 내면을 알아봐 주는 그 누군가와 이해하고 이해받으며, 탐하고 탐함을 받으며, 오늘이 끝일 것처럼 러쉬하기를...